해외영화(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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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 가족이란
폭풍전야. 영화 걸어도 걸어도(Still Walking , 2008)를 보며 떠올린 감정이다. 보기에는 소소한 대화를 하는 한 가족의 일상을 담은 것 같지만, 수면 아래에 깔려 있는 이들의 사연은 실로 무겁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10년 전 사고로 죽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에 모인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당시 바다에 놀러 간 준페이가 물에 빠진 요시오를 구하다 그만 변을 당했고, 그로부터 이들 가족들은 매년 여름 고향집에 모인다. 자칫 무거운 소재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잔잔하고 평화로운 장면으로 승화했다. 이 때문에 평범한 일상 속 장면인데도, 어디선가 진한 슬픔이 배어 있다. 모처럼 고향을 찾은 가족의 모습에는 쓸쓸한 분위기가 어른댄다. 밝아 보이지만, 정작 밝지 않은 묘한 감정선..
2022.06.06 -
영화 울프콜, 전직 외교관이 바라본 핵 미사일 발사 명령
늘 그렇듯 영화를 보기 전 제목을 유심히 보게 된다. 해당 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첫 메시지가 담겨서다. 관객 또한 먼저 접하는 게 영화 제목이다 보니, 많은 감독들도 영화 제목 선택에 공을 들인다. 영화 울프콜(Le chant du loup, the Wolf's Call)을 처음 접했을 때도 제목의 의미부터 떠올렸다. 포스터만 보고 전쟁 관련 메시지로 보였지만, 도통 울프콜의 뜻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짧은 생각으로 영화 속 작전명이 '울프콜'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영화가 진행되고 나서야 울프콜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울프콜의 의미는 다름아닌 잠수함 소리. 잠수함이 능동 소나(SONAR)의 발신 주파수를 내는데, 그 소리가 늑대 울음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나온 군사 용어 중 하나였다. 제목 그대..
2022.06.05 -
영화 리플리, 소설 '죄와벌'이 생각나는 이유
리플리 증후군. 본인이 만들어낸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스스로 내뱉은 거짓말을 통해 마치 배우처럼 그 세계 안에서 산다. 그렇다고 리플리 증후군이 정신적 질환으로 속해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한 매체에서 보도된 전문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증후군은 '망상 피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 마디로 반사회적 인격장애, 분열형 인격장애 등과 같은 정신적 질환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리플리 증후군은 1955년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가 나오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 이 소설을 각색한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를 통해 수면 위로 오르게 된데 이어 지난 1999년에는 감독 안소니 밍겔라의 영화 리플리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
2022.06.04 -
영화 인타임, 참신한 소재를 못살린 아쉬움
시간은 돈이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남긴 말이다. 영화 인타임(In Time)은 이같은 명언을 영화적 소재로 구현했다. 화폐 대신 시간으로 계산되는 소재가 바로 그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영화 인타임에선 돈 대신 시간으로 계산한다. 25세가 되면 모든 이들이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고,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월세, 교통비 등을 지불하며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시간이 단 1초라도 없으면 사람은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는다. 이 때문에 살기 위해 시간을 뺏는 이들도 생기게 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이 계속해서 일어나지만, 시간은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목숨이 걸린 시간이 불평등하게 나눠지게 되면서 빈민가 '데이톤'에는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 부민가 '뉴 그리니..
2022.05.21 -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해석, 상처받은 이들 그리고 탐욕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Nightmare Alley)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베토벤 교향곡 5번이 떠올랐다. 쉴새없이 몰아붙이는 힘이 영화 막판 고스란히 담겨서다. 영화는 초반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폭풍전야와 다름없다. 이같은 긴장감은 태풍처럼 휘몰아 치는 결말로 다다르며 보는 이로 하여금 짙은 여운을 남기게 한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무려 1946년에 출시된 소설 '나이트메어 앨리'를 재해석 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이다. 앞서 보여준 SF적인 요소가 아닌 클래식적인 분위기가 듬뿍 담겨 있어 기존 영화팬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토로 감독의 세계관이 누구보다도 거대하다는 걸 입증했다.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냐,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거지"..
2022.05.16 -
영화 캐스트 어웨이, 무인도에 갇힌 삶
영화 소개 유튜브를 보고 있다가,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의 장면이 어렴풋히 떠올랐다. 무인도에 갇힌 척 놀랜드(톰 행크스)의 치열한 생존 모습이 머릿 속에 맴돌다 이내 사라졌다. 그러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희미했다. 그래서 척 놀랜드가 탈출했던가. 20년이 넘어서야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다시 보게 됐다. 그러면서 완전히 잊혀졌던 척의 삶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척은 페덱스의 직원 가운데 한 명으로 일만 하는 소위 '워커홀릭'이다. 그런 그가 캘리 플레어스(헬렌 헌트)와 약혼을 앞두고 돌연 무인도에 불시착 하게 된다. 캘리와의 미래를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는 척. 그는 표류된 고객들의 소포들을 꺼내 생존에 나선다. 스케이트 칼날로 칼을 만들고, 옷을 꺼내 어망을 만들기 시작한다. 하..
2022.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