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터슨(Paterson) - 그렇게 살아간다

2020. 2. 16. 13:13영화산책/사람들의 이야기, 낭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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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패터슨(Paterson) 스포일러 있습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가 아른거렸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Paterson)을 보며 떠오른 느낌이었다. 잔잔한 일상의 바람에 ‘화려한’ 잎은 떨어져 나갔고 이를 지탱하는 '삶'이라는 뿌리가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곳곳에선 ‘외로움’이 불쑥 튀어나왔다.

영화 패터슨 다음 스틸컷

 

‘패터슨’ 마을에 ‘패터슨’ 버스를 모는 패터슨. 그의 일상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내인 ‘로라’와 아침을 함께 맞이하고 버스를 운전하면서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퇴근 후에도 비슷하다. 로라와 저녁 식사를 하고 반려견과 함께 자주 찾는 ‘바’에 가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게 전부다. 어찌 보면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어찌 보면 규칙적인 일상. 어느 노동자의 하루와 꼭 닮았다. 

영화 패터슨 다음 스틸컷

 

그래서일까. 소소한 일상 곳곳에는 쓸쓸함이 풍긴다. 패터슨과 일상의 대화를 나눌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로라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대화는 깊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다. 로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만, 패터슨은 그저 들을 뿐이다. 그것은 바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패터슨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만을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패터슨과 온전한 ‘대화’를 나눴던 인물은 시를 짓는 어린아이 그리고 ‘아~하!’를 외친 일본인 시인뿐이다.

마을 사람들도 딱히 다를 게 없다. 버스에서 나눈 대화는 서로 어긋나고 각자의 생각이 뚜렷하다. 한 명이 말하고 한 명이 듣는 쌍둥이도 이런 대화에 동참한다. 평화롭지만, 편안하지 않은 일상의 대화. 관객들은 대화의 단절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된다.

영화 패터슨 다음 스틸컷

 

시(時)만이 그의 소통 수단. 

 


단조로운 일상 뒤에 시(時)를 대하는 그의 열정만은 달랐다. 뚜렷한 감정 기복이 없던 패터슨은 시 앞에서만큼은 달랐다.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심지어 사람들과 있을 때도 시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패터슨은 끊임없는 시적 고뇌를 통해 자신만의 시적 대화를 나눴다. 비밀노트에 적힌 시만이 그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자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고 사랑이자 삶이었다.

영화 패터슨 다음 스틸컷

 

그렇게 살아간다

 


어느 토요일. 쌓아왔던 시가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된다. 그것도 사랑하는 로라와의 기분 좋은 외출 뒤에 일어난 일이다. 대화의 매개체가 끊긴 패터슨은 크게 좌절하고 로라는 그를 보며 진심으로 위로한다. 방향을 잃은 패터슨. 그는 폭포수가 보이는 곳에서 우연히 한 일본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는 말과 함께 새 노트를 선물 받는다. 월요일을 앞둔 패터슨에게 또 다른 일상이 다가왔다는 의미다.

 

영화 패터슨 다음 스틸컷

 

영화 패터슨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버스가 고장 난 게 그의 일주일 중 가장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뿌리 깊은 일상을 한 폭의 시로 담아냈을 때 전해지는 영화의 매력은 깊고도 진하다.

 

짐 자무쉬 감독은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 스스로 중심이 되는 가벼우면서도 조용한 세계를 일부러 만들었다”며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사랑편지 또는 에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끝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짐 자무쉬 감독이 실제로 좋아하는 작가와 뮤지션들이라고. 영화 속 소녀가 지은 시 ‘물이 떨어진다’는 짐 자무쉬 감독이 직접 짓기도 했다. ‘커피와 담배’에 이어 ‘맥주와 시’라는 또 하나의 궁합이 나타난 것은 아닌지. 영화 패터슨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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