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2. 00:51ㆍ영화산책/현실을 꼬집다, 사회 비판 영화
영화 킹메이커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영화는 한국 근현대 정치사를 담아내며 숨겨진 故김대중 대통령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이어온 사회의 해묵은 갈등이 왜 생겨났는지를 전한다.
영화 킹메이커는 실제 얘기를 토대로 그려낸 작품이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강원도에서 약재상을 운영한 엄창록이 연이어 낙선하는 김대중을 도와 총선, 재선을 연이어 이긴 과정을 담은 내용이다.
엄창록은 당시 '이기는 선거'로 김대중의 핵심 참모로까지 올라간다. 실제 보도된 내용을 보면 김대중이 신민당 대회에서 대세였던 김영삼을 누르고 총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배경에 언론은 엄창록을 꼽는다. 엄창록의 모책으로 열세였던 총재 자리의 판세를 뒤바꿨다고 집중 조명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둘의 관계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1971년 김대중의 집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불화의 불씨가 일어났다. 당시 보도 내용을 보면 폭발물은 인마살상용이 아니었고, 화약냄새조차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당시 김대중 일가는 방미 중이었고 뒷문 옆집의 개도 짓지 않아, 그 배후로 엄창록이 지목됐다고. 이 때문에 자작극을 통해 지지율을 높이려 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신민당은 당시 야당 탄압이라고 규탄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 일로 둘 사이의 관계는 어긋나고, 연이어 승승장구했던 김대중은 결국 지역주의를 내세운 박정희를 끝내 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박정희가 꺼낸 지역주의 카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나눈 지역갈등은 매 선거때마다 툭 튀어나온다. 당시에도 독한 수법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기는 수단'을 가진 엄창록의 작품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지만, 아직까지 세간에 드러난 사실은 없다.
엄창록은 또 정치 판세를 기가 막히게 읽어냈는데, 지난 1988년 대통령선거 당시 노태우가 이길 것으로 내다봤다고 한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동시에 나와 서로 표를 갈라먹는다는 것이었다.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 맞았다. 김영삼은 그 뒤 여당과 야당이 합당하는 이른바 '삼당합당'이라는 카드를 꺼내 14대 대통령으로 올라섰고, 김대중은 그 뒤를 이어 1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영화 킹메이커는 이러한 역사적 내용을 충실히 담아냈다. 김대중 역할인 김운범(설경구)과 엄창록 역할인 서창대(이선균)의 모습을 통해 당시 한국 정치사의 이면이 잘 드러난다. 박정희 역할의 박기수(김종수)의 장기 독재. 부정선거. 그리고 당시 시대 특유의 흡연(?)문화까지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시대상을 잘 담아냈다. 억지로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이 몰입을 도울 수 있도록 서사를 잘 불어넣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영화의 구성은 탄탄하다. 여기에 배우들의 열연까지 곁들여지면서, 영화는 보는 내내 몰입을 더한다. 영화 킹메이커를 연출한 변성현 감독은 김운범의 모습보다 그림자인 서창대를 통해 본 김운범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빛과 어둠으로 김운범과 서창대의 모습을 대비시켰고 이는 고뇌하는 서창대의 내면과 딱 맞아 떨어졌다.
영화 킹메이커를 보면서 이제 3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제 20대 대통령 선거를 떠올렸다. 확실히 이전 대선과는 다른 양상이다. 화합과 소통은 뒷전이고, 아젠다 없이 자기 진영의 표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일부 후보들의 모습을 보며 국민을 갈라치고 지역주의 갈등을 노린 영화 속의 내용과 다를 게 없다. 심지어 50여 년이 지났는데도 회복이 안되는 지역 갈등을 넘어 이제는 '세대 갈등'으로까지 치닫는 모습이다. 또 다른 갈등이 고개를 들려고 하는 것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며 영화 속 김운범이 서창대에게 한 말이 기억에 맴돈다.
"정치를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정치를 왜 하는지가 중요하지."
영화 킹메이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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