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해석, 전두광을 통해 본 전두환 그리고 뒷이야기

2023. 12. 11. 20:58영화산책/현실을 꼬집다, 사회 비판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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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다음 스틸컷

 

 

영화 서울의 봄이 순항하고 있다. 영화는 개봉 18일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영화 국제시장(1426만명)보다 빨라, 결과에 대한 영화계의 관심 또한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영화 역대 흥행 기록 1위는 영화 명량(1761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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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 그대로였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광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실제 발생한 12.12군사쿠데타 사건을 각색한 작품이다. 당시 치열했던 9시간의 상황을 스크린 상에 고스란히 담아내며 2시간 이상의 몰입을 이끌어 낸다. 결말을 아는 사건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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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김성수 감독의 연출력이 탄탄하다는 의미다. 김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서울의 봄을 연출할 당시 속도감에 신경썼다고 밝혔다. 그는 "옛날 사건이기에 메시지만 너무 강조되는 건 원치 않았다"며 "액션과 총격이 많진 않지만 긴박한 공방전이 마치 관객들을 그날로 밀어 넣고 상황을 따라가게 만들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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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는 단연코 훌륭했다.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과 이태식을 소화한 정우성은 두 캐릭터 간의 신경전을 잘 녹이며 몰입을 도왔다. 여기에 주변 배우들마저 각 캐릭터를 보여주며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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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정우성은 영화 서울의 봄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고사했다고 한다. 앞서 영화 헌트에서 연기한 김정도와 이태신의 캐릭터가 비슷했고, 당시 작품의 시대적 배경도 신군부 정권과 맞닿아 있어서였다. 그런데도 영화 비트때부터 함께한 김성수 감독의 연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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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에는 어떤 일이?

 



그렇다면 실제 1979년 12월 12일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시 전두환·노태우 등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가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으로 연행하는 등 사건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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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이 진압군에게 총격을 가한 것도 사실이고, 반란군을 막기 위해 진압군이 한강 다리에 바리케이드를 친 것도 맞다.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장태완(영화 속 이태신) 장군이 최후 결전을 염두해 두고 100여 명의 병력을 집결한 것도 사실. 하지만 반란군의 치밀한 계획 앞에 진압군은 끝내 물러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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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13일에 주요 신문을 보면 계엄사령관을 불법으로 연행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전두환 정권 즉, 제 5공화국이 들어서게 됐고, 이에 맞서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됐다. 5.18 민주화 운동에 이어 대학가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이 뒤따랐고, 6월 민주 항쟁, 부마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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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건 신군부의 군사반란이 무려 1993년 초까지만 해도 정당화됐다는 점이다. 그만큼 신군부의 입김이 셌다는 의미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오면서야 이 사건을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했다. 동시에 군사 반란의 빌미가 됐던 하나회가 해체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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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과 맞서 싸운 진압군, 그 이후

 



반란군에 저항했던 진압군의 최후는 좋지 않다.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장군은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가혹한 조사를 받는다. 장 장군이 한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1980년 3월에야 풀려났으며 이후 강제 전역을 당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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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에 장 장군의 부친은 원통하여 곡기를 끓고 막걸리만 마시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서울대에 합격한 외아들은 1982년 1월에 갑작스럽게 행방불명 됐다가 낙동강 변에서 숨진채 발견했고, 장 장군의 와이프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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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령관 정병주(영화 속 정만식) 장군은 실제로 총격전을 받아 부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김오랑(영화 속 오진호) 소령은 목숨을 잃게 되는 데, 이 충격에 김오랑 모친과 부인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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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군은 계속해서 12.12의 진실을 밝히려고 했지만, 1989년 야산에서 숨진채 발견된다. 헌병감 김진기(영화 속 김준엽) 장군도 고초를 겪고 강제 전역을 당한다. 그는 노태우 정부로부터 자리 제안을 받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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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신군부 정권 당시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무수히 나왔다. 영화 헌트, 영화 화려한 휴가, 영화 택시운전사, 영화 26년 등이 그 것이다. 다만 영화 서울의 봄처럼 12.12사태의 과정을 담은 작품은 처음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많은 의미를 내포한 작품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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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역사를 보다 보면 인류는 매번 실수를 되풀이 한다는 것. 그리고 그걸 다시 바로 잡으려고 한다는 것. 그러면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것. 늘 그래왔다. 영화 서울의 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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