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4. 07:38ㆍ영화산책/벌써 끝? 킬링타임 영화
배우 이정재 감독의 첫 영화 헌트(HUNT)는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과는 또 다른 결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1979년 '박정희 시해 사건'을 다뤘다면 영화 헌트의 무대는 그로부터 4년 뒤인 1983년 '전두환 암살 사건'으로 옮겨갔다. 다만 영화 헌트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과 달리 사실이라는 소재 위에 보다 더 감독의 시각을 담았다. 각색을 통해 감독의 상상력을 더 불어 넣었다는 의미다.
영화 헌트는 전두환 독재 시절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 사이의 치열한 갈등을 담고 있다. 조직 내 숨어든 북한 간첩 '동림' 색출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둘 중에 한 명은 간첩으로 몰리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데, 이로 인한 박평호와 김정도의 끊임없는 눈치 싸움은 관객들의 몰입을 절로 도울 정도다.
영화 헌트를 보며 놀라운 건 역사적인 상황 위에 감독의 각색이 강하게 들어갔는데도 어색하지 않다는 거다. 전두환 정권 당시에 일어난 광주 민주화 운동, 대학생들의 모진 고문 등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영화 속에 부드럽게 흘러간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정재 감독은 당시 상황을 직접 겪으면서 이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 감독은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 신촌에 살아 최루탄 냄새가 익숙하다"며 "응원하는 동네 아저씨 분들도 계시지만, 반대로 생활하기 너무 힘들다고 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런 모습을 많이 봤다"고 밝혔다.
촬영 기법도 눈에 띄었다. 영화 아수라, 악마를 보았다 등의 작품을 촬영한 이모개 감독이 참여하면서 긴박한 인물의 심리를 카메라 속에 잘 담아냈다. 무엇보다 영화 초반 보여준 오프닝 장면은 내용을 넘어 시각적으로 영화적 몰입을 돕는다. 또 영화 공작의 박일현 미술 감독 또한 당대의 상황을 잘 구현해 내며 시대상의 이질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다만 아쉬운 건 박평호와 김정도의 과거를 소개하는 장면이 중간 중간 나뉘어져 있어 영화 중간 흐름이 뚝뚝 끊기게 한다는 점이다. 차라리 오버랩 효과를 이용해서 한 번에 과거를 조명했다면 더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았을런지 아쉬움은 있다. 그런데도 국내 영화 특유의 신파적인 소재를 살리지 않아 영화의 몰입은 상당한 편.
참고로 영화 헌트에서 나온 방콕에 대한 사건은 1983년 미얀마(과거 버마)에서 벌어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보인다. 당시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지녔던 미얀마에 한국이 제 3외교를 넓힌다는 명분으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순방차 들렸으나, 타이어가 터지는 바람에 참모진만 전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로 남북관계를 넘어 미국과 소련의 국제 관계 또한 크게 악화됐다. 역사에는 만약이란 게 없지만, 이 테러가 성공했을 경우 한반도에선 또 다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짙었다고 한다.
영화 헌트를 보면서 배우 이정재의 새로운 도전이 아름답다. 첫 작품인데도, 결말까지 어색하지 않은 작품을 보면서 벌써부터 감독 이정재의 후속작을 기대하게 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영화 헌트에서 충무로 동료 배우들이 발벗고 나선 게 눈길을 끈다. 황정민, 이성민, 박성웅, 주지훈 등 주연급 배우들이 욕심부리지 않고 영화 캐릭터를 살리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을 했다. 이들이 왜 배우로써 인정을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또 '사고초려'한 정우성이 없었다면 김정도의 역할을 누가 했을지 가늠이 안 간다. 정우성, 이정재 두 배우들의 연기는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고 탄탄했다.
지나치면 부족하다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면 이번 영화 헌트에선 다다익선이 떠오르는 건 왜. 영화 헌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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